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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구형 비디오폰 셀프 철거하기!

juu.h 2025. 1. 27. 10:03

나는 스마트홈에 관심이 많지만, 돈이 없기 때문에 자가를 사기 전까진 스마트홈을 구축할 계획이 없었다.

그러나 스마트홈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전셋집에 있는 비디오폰이 너무 구형이고 뚱뚱해서(심지어 영상 기능은 제대로 동작하지도 않음) 인테리어도, 펜트리도 안 되고 공간만 차지하는 게 싫어 비디오폰을 철거했고 자연스럽게 이와 연결되어 있는 도어벨도 제거해야 했는데, 어쨌든 도어벨 자체는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토 준지의 만화 오시키리 시리즈 中 '환각'.
"나는 어제 교수님을 죽였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시험 범위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지 수업만 듣는 줄 아나 보지."로 문구가 패러디되어 짤/밈이 되었다.
이토 준지의 만화 오시키리 시리즈 中 '환각'. "나는 어제 교수님을 죽였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시험 범위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지 수업만 듣는 줄 아나 보지."로 문구가 패러디되어 짤/밈이 되었다.

 

말도 안 되는 흐름이라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기숙사(고등학생), 풀옵션 원룸 자취(대학생), 풀옵션 투룸 아파트 자취(지난 2년)를 지나와 처음으로 혼자 직접 발품을 팔아 전세 계약한 이번 투룸 빌라는 꼭 필요한 몇몇 가구 외의 모든 것을 스스로 꾸며야 하는 상태였고, 오랜 기간 독립적인 생활을 해 왔기에 은근히 나는 짐이 많았다. 또 자취 기간이 길기에 내가 무엇을 편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예쁘다고 생각하고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지, 주거비엔 얼마까지만 투자하고 싶고 그 안에서 다른 가치와 조정할 수 있는 금액은 얼마까지인지, 내가 자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범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구축 건물은 대략적으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내 또래의 다른 이들보다는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넓지 않은 거실에 조그마한 펜트리를 설치하며,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생산 및 출고된 한 구형 비디오폰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Commax의 DPV-4ME이다. 철거 전에 사진을 따로 찍어두지 않아 User Manual에서 퍼왔다.

 

철거하기로 마음 먹은 후엔, 그래서 이 비디오폰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다. 특히 철거 방법을 검색하며, 구식 비디오폰은 벽 안으로 배선된 AC 220V를 받아 작동하며 현관 앞에 있는 도어벨의 카메라, 초인종 버튼과 직접 유선 연결되어 있고, 호환되는 비디오폰으로 바꿔 달지 않으면 초인종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게 되니 '도어벨과 비디오폰을 모두 교체하기 vs 그냥 살기' 중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펜트리와 짐, 비디오폰의 동작(앞서 적었듯 비디오는 동작하지 않는 상태였다.), 실제로 나에게 방범 기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교체할 때 (기사님을 호출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도)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다른 얇은 비디오폰은 얼마나 얇고 작아 펜트리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지 등을 충분히 고민했다.

 

  내가 필요한 것 대체/조정 가능성
펜트리 대체 가능성 물티슈, 두루마리 휴지, 세제, 섬유유연제 등 적재할 수 있어야 하고 전자레인지, 커피 포트가 올라갈 수 있어야 함 집에 창고가 없어 거실을 활용해야 하며, 높은 신발장이 없어 펜트리 대체 불가
현 비디오폰의 동작 및 실제 방범 능력 비디오 작동 x, 화질 낮아 보임, 특정 시간의 영상 저장/원격 확인 등의 기능 없음 자취하며 겪은 몇몇 경험으로 인해 해당 기능을 원함, 저장/원격 확인 기능이 없더라도 초인종이 눌렸을 때 집 안에서 문 앞에 있는 사람을 볼 수는 있어야 함(단순 도어벨 X)
교체 비용 기능에 따라 30만원 이하로는 OK (방범 중요!) 상용 비디오폰 가격은 저렴하면 몇만원(5만원 아래도 있음), 비싼 것은 20만원 정도
다른 얇은 비디오폰(교체품) 의 펜트리 설치 시 간섭 여부 없어야 함 아무리 얇아도 현 비디오폰의 1/2~1/3 수준, 물건을 해당 구역에만 쌓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펜트리 자체와의 간섭이 있음

 

즉, 내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추리면 다음과 같다.

 

- 해당 공간을 꼭 펜트리로 사용해야 함.

- 적어도 집 안에서 현재 현관문 앞을 확인 가능해야 함.

- 펜트리와 절대 간섭이 없어야 함.

 

문제는 저 양보가 안 되는 가치가 상충한다는 점이었다. 집 안에서 현재 현관 앞을 확인하려면 비디오폰이 필요한데, 비디오폰은 아무리 얇거나 작은 제품도 펜트리 설치 시 간섭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러 도어벨을 찾아보던 중, 아래와 같은 제품을 발견했다.

 

https://iotmall.kr/product/iot-%EC%8A%A4%EB%A7%88%ED%8A%B8-%EB%8F%84%EC%96%B4%EB%B2%A8/62/

 

IoT 스마트 도어벨

PLEASE SELECT THE DESTINATION COUNTRY AND LANGUAGE : SHIPPING TO : 가나(GHANA) SHIPPING TO : 가봉(GABON) SHIPPING TO : 가이아나(GUYANA) SHIPPING TO : 감비아(GAMBIA) SHIPPING TO : 과테말라(GUATEMALA) SHIPPING TO : 그레나다(GRENADA) SHIPPI

iotmall.kr

※ 해당 제품 제조사, 유통사 등으로부터 단 1원도 받지 않은 내돈내산 후기입니다.

 

집 안에서뿐 아니라 집 밖에서도 어플을 통해 실시간으로 현관 앞을 확인할 수 있고, 원하는 시간대의 영상을 저장할 수 있지만 어플리케이션으로만 현관 앞을 확인할 수 있어 비디오폰이 따로 필요 없는 제품이다.

비슷한 가격대의 타 제조사 IoT 스마트 도어벨/비디오폰 중에서도 더 좋고 유명하고 스마트 홈 플랫폼과 함께 사용 가능하고 블루투스나 zigbee 통신을 지원해 저전력으로 이용 가능한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제품을 선택한 이유는 비디오폰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영상 저장 공간 쥐똥만큼 주고 클라우드 결제하면 공간 줄게! 히히! 하고 추가 과금을 유도하지 않는다는 점, 타 IoT 도어벨처럼(ex. Tapo D230S1) 도어벨 사용을 위해 별도의 허브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이 세 가지 때문이었다. 이 녀석을 구매하고 나는 비디오폰을 철거하기로 결심했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

 

벽에 설치되어 있는 철제 걸이에 걸려 있는 낡은 비디오폰을 살며시 들어 보니, 영상이 왜 나오지 않았는지, 초인종 소리가 왜 이상하게 울렸는지 1초 만에 깨달았다. 대충 나사와 닿게만 해 놓으니 작은 외부 충격에도 접촉 불량이 발생하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군데군데 녹아 있는 전선을 사용하니 단선되고, 일부 피복이 벗겨져 있으니 잘못하면 합선까지 일어날 수 있는 상태였다. 절대 전문 설치 기사의 솜씨는 아닌 것 같지만, 나도 전문 설치 기사는 아니고 아무튼 이렇게는 하지 말자 생각했다…

 

97년생이시다.

 

정격전압 AC110V~220V, 60Hz를 보면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대로 AC 220V를 직접 받는 형태이다. 결선도를 보니 색이 있는 전선들은 모두 도어벨로 보내는 선인 듯하고, 희고 굵은 선이 비디오폰에 전원을 공급하는 AC 220V 케이블일 것이다. 자, 지금부터 당장 드라이버를 가져와 만만한 신호선 먼저 제거하면 될까?

 

 

겠냐?

오래 살고 싶으면 차단기 먼저 내려라. 특히 혼자 사는 사람이면. 당신이 주말에 이런 거 작업하다 잘못 감전되어서 쇼크로 쓰러져도, 화요일 오후나 되어서야 말 없이 이틀 연속 결근하는 당신이 걱정된 직장 상사가 119를 불러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AC라곤 이론으로만 끄적여 봤을 뿐 실제로는 DC밖에 안 다뤄본 개쪼렙 전자과 출신이라 쫄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사실 맞긴 하다. 그렇지만 이럴 때 누전 차단기를 가장 먼저 내려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테스터기로 잔류 전압이나 누설 전류까지 측정한 후 작업하면 더 좋겠지만, 집에 테스터기 사 놓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물론 나는 저가형 디지털 테스터기가 있긴 하다. 그러나 공부 목적으로 사 둔 것이니 모두에게 필수라고는 말 못하겠다.) 안전사고는 스스로 예방해야 한다.

 

 

사진 상에서 맨 왼쪽에 있는 토글을 내려 주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지만, 그렇게 하니 거실에 쳐 놓은 암막커튼 때문에 대낮인데도 잘 안 보이고 작업하기 어려워서 비디오폰 쪽에 연결된 차단기를 내리고, 반대쪽에 해당하는 전등을 켜서 작업했다. 확인 방법은 간단하다. 비디오폰의 전원을 켜 놓고 우측의 차단기를 하나씩 내려 보며 비디오폰의 전원이 꺼지는지 보면 된다. 그렇게 차단기를 내리고, 접촉 불량이라 제거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겠는 도어벨과의 연결선부터 드라이버를 돌려 분리해 주었다.

AC 220V Input Connector 분리.

 

비디오폰은 무겁고, 선을 분리하려면 비디오폰의 뒷면에 있는 나사를 풀어 해체해야 하고 정신이 없어 전원선이 어떻게 들어가 있었는지는 제대로 찍지 못했다. 다만 벽에서 나온 케이블이 컨넥터를 통해 내부 SMPS 보드에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다른 가전들의 SMPS도 다 이런 방식인가…? 가전을 오래 사용하다 보면 전원 케이블을 외부에서 잡아당겨 피복이 벗겨지거나 내부 케이블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때의 감전 등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이렇게나 쉽게 빠지지 않게 설계되어 있나 싶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면 작업자가 엄청 힘들 텐데… 원래는 철거만 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제품을 뜯어본 셈이 되었다.

 

AC 220V 전원선의 흐름 배치. 엄살이 아니라 정말 고생했다.

 

정확한 구조는, 사진에서 □로 AC 220V 전원 케이블이 들어와 CRT를 받쳐 주는 기구물의 아래를 타고(그래서 사진상 해당 기구물의 나사도 풀어져 있는 것이다.) ○의 컨넥터로 연결되는 방식이었다. 이 글을 작성할 즈음이 되니 드는 생각은, '제품의 뚜껑을 열어서 정석적으로 컨넥터를 분리할 게 아니라 그냥 선을 외부에서 잘라 버릴걸.'이다. 나중에 다시 연결하고 절연하면 됐을 텐데. 역시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절연!

 

벽 밖으로 삐져나온 선들은 절연 테이프로 붙여 간단히 절연해준다. AC 220V 선은 무서우니 특별히 컨넥터 위로도 절연 테이프를 칭칭 감아 더 안쪽으로 집어넣어줬다. 이제 누전 차단기는 다시 원래대로 올려줘도 된다.

그리고 해체한 김에 구형 비디오폰을 구경한다. 제조년월이 971052인(?) 비디오폰은 대체 어떤 구조일까?

 

그런데 왜 SMPS만 저렇게 드러울까…? 위치상 먼지가 잘 쌓이는 곳이라서?

 

SMPS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AC 220V가 직접 꽂히는 저 보드는 AC 220V를 낮은 전압의 DC 전원으로 바꿔 주는 역할을 하는 보드일 것이다. 일단 나도 그 SMPS를 잘 모르는 사람 중 하나인데, 비디오폰의 기능상 DC 전원으로 바꿔주는 뭔가가 없으면 안 된다. 추후 이 녀석을 들여다 보며 97년도의 SMPS는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공부해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녀석. 모든 것이 슬림해지고 컴팩트해지는 세상에 발맞추어 SMD Type이 아니면 잘 모르는 요즘 것들답게, VR이라는 Reference Number만 보고 '바리스터인가? 그런데 무슨 바리스터가 저렇게 십자 드라이버로 꽂는 것처럼 생겼지? Dip Type 중에 핀을 납땜하는 게 아니라 드라이버로 돌려서 꽂는 게 있나?' 생각했다. 그런데 생김새가 너무 신기해서 최근까지 구글링을 하고, 하고, 또 하다 겨우 알게 됐다.

 

유사품 : https://icbanq.com/P012849790

 

가변저항 트림팟 키트 10KΩ 10개 : 가변저항(Potentiometer) > R/L/C부품 수동소자

주로 많이 쓰이는 10KΩ 가변 저항입니다. - 850원 국내 최대 전자부품 전문 쇼핑몰 - 아이씨뱅큐

www.icbanq.com

※ 저는 IC뱅큐에게서 단 1원도 받은 적 없습니다. 반대로 제가 여기서 돈을 썼으면 썼지

 

저 녀석은 가변 저항이고, 십자 드라이버로 저항 값을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Variable Resistor라 Reference Number가 VR로 따져 있던 거다……. 가변 저항이라고는 정말로 SMD 타입밖에 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너무너무 신기했다. 104라는 마킹은 저 녀석이 가변 저항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100㏀이라는 뜻이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비디오폰을 해체한 후 가장 신기했던 것은 바로,

 

'브라운관'의 그 CRT다.

 

이 CRT였다.

학교에서 8-Segment LCD나 OLED를 제어하는 실습은 해 봤어도 CRT는 정말 처음 봤다.

물론 당연히 어릴 때 CRT로 만들어진 텔레비전을 보고 컴퓨터를 사용하며 자랐지만, 그 어린 나이에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분해해 CRT를 직접 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LCD 등 좋은 디스플레이 기술이 발전하여 CRT TV가 국내에선 단종된 지 10년도 넘었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제 CRT는 전자공학과에 진학한 대학생에게 굳이 가르칠 이유도 없고, 사회에 나가 다뤄 볼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뚱뚱하고, 무겁고, 화질도 별로고, 위험하고, 발열이 심하고, 소모 전력이 높고, 켤 때 화면 표면에서 정전기가 생기고, 전자파 나오고, 화질도 낮아 여러 장치에서 단종된 지 오래이고, 그래서 오히려 구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그래도 나보다 일찍 태어난 이 비디오폰은 CRT로 영상 정보를 출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고, 집을 꾸미는 일상 속에서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사진 찍는데 오래 들고 있으려니 손목이 아프더라. 확실히 무겁다.

 

찾아봤는데, 모가지에 이렇게 칭칭 감겨져 있는 코일은 '편향 코일(Deflection Coil)'이라고 한단다. CRT 내부의 Electron Gun에서 발사된 전자 빔을 X축, Y축으로 움직이게 하여 화면 전체를 주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영상 신호에 따라 전류가 조절되면서 화면을 구성하는 픽셀을 하나하나 그려 간다고 하는데, 솔직히 제대로 이해는 못했다. ^^;;; 해당 CRT의 P/N가 선명하게 적혀 있어서 구글링도 해 봤지만, 단종된 지 꽤 오래 됐는지 이 CRT가 들어간 타 시리즈의 Commax 비디오폰이 고장나서, 타 제조사 비디오폰에 있는 동일 CRT를 떼다 연결해 고치는 어떤 외국인의 포스트를 제외하면(ㅋㅋㅋ) 모두 전혀 관련 없는 제품들만 나왔다. 그래도 시간이 허락해 준다면 CRT의 원리를 천천히 공부해 보고 싶다. LCD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텔레비전의 발명과 동시에 거의 모든 텔레비전 디스플레이의 점유율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해 온 역사이기에 상식으로 알고 있다면 미래의 내가 어떤 영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아직은 스마트홈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리 많이 하지 않았지만, 스마트홈을 꾸리며 이것저것 배우고 공부하는 이야기이니 너그러이 바라봐 줬으면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몇몇 자동화 기능까지 구축해 두었다. 아직 테스트 중이지만, 이미 철거/설치 완료한 것에 대한 이야기는 부지런히 써 봐야지.